드라마로 다시 뜬 역사소설 작가 박경리 김홍신 신봉승
최근 몇 년간 영상 콘텐츠의 확산은 문학시장에도 긍정적인 파급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역사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그 작품을 쓴 작가들까지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단지 '인기'를 넘어, 역사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다시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드라마 혹은 영화화를 통해 다시 떠오른 역사소설 작가 4인을 중심으로 그들의 작품 세계, 인물 설정, 역사 해석 방식, 그리고 드라마화가 작가에게 어떤 문학적 가치를 더했는지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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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로 다시 뜬 역사소설 작가 |
1. 박경리 – 『토지』가 드라마로 수차례 재탄생한 이유
대표작 드라마화:
- MBC 대하드라마 『토지』(1987)
- SBS 드라마 『토지』(2004)
박경리는 대한민국 문학사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의 역사소설인 『토지』를 집필한 작가입니다. 이 작품은 1897년 대한제국 선포 직전부터 해방 직후까지 근 50년에 걸친 격동의 한국사를 평범한 민중의 눈으로 기록한 대서사입니다.
『토지』는 5부에 걸친 방대한 분량이지만, 그 중심에는 서희, 최참판 일가, 김길상, 월선이 등의 인물이 있습니다. 이들은 실존 인물이 아닌 허구의 캐릭터이지만, 시대의 풍파와 함께 호흡하며 독자에게 역사적 감정을 체험하게 하는 매개체가 됩니다.
드라마는 이 복잡한 구성을 시청자 친화적으로 단순화하면서도 시대의 질감, 계급 갈등, 민중의 저항 등을 섬세하게 담아냈습니다.
작품의 특징:
- 허구 인물 중심 / 시대 고증은 철저
- 여성 서사와 계급, 민중 서사 강조
- 전통과 근대, 가족과 국가의 충돌
드라마화 효과:
- 전 세대에 걸친 ‘국민 소설’ 재부상
- 교과서 포함, 토지문학관 활성화
- 영상물 통해 젊은 층 유입 증가
인물로 시대를 증언한 박경리
박경리는 『토지』를 통해 단지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인물을 빌려 시대가 인간에게 어떤 폭력을 가했는가, 그럼에도 인간은 어떻게 존엄을 지키려 했는가를 끊임없이 탐구했습니다.
그녀의 역사 고증은 기록과 연대보다 삶의 실감과 정서적 진실에 집중합니다. 그녀의 인물은 사건의 들러리가 아니라 시대를 증언하는 문학적 목격자입니다.
『토지』는 단지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학적 탐구로 읽혀야 할 동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역사소설입니다.
2. 김홍신 – 『인간시장』 이후 『대왕의 길』로 역사소설 진입
대표작 드라마화:
- KBS 대하드라마 『대왕의 길』(1998)
김홍신은 대중문학과 역사소설을 모두 아우른 작가입니다. 『인간시장』으로 사회파 장르를 대표했다면, 『대왕의 길』은 영조와 사도세자 간의 비극을 문학적 상상력과 정치적 통찰을 담아 새롭게 구성한 역사소설입니다.
드라마 『대왕의 길』은 원작의 기본 구조를 바탕으로 왕과 아들, 정치와 감정, 왕권과 사대부의 갈등을 집중 조명하며 김홍신의 스토리텔링 감각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작품의 특징:
- 실존 인물 중심 / 심리 묘사 강화
- 정치+가족+심리의 3중 구도
- 실제 사건을 문학적으로 재구성
드라마화 효과:
- 왕실 드라마 붐 형성
- 정치사 중심 역사소설의 흥행 가능성 입증
- 김홍신의 중년 독자층 확대
3. 신봉승 – 사극 드라마 대본을 직접 쓰며 역사소설로 확장
대표작 드라마화:
- KBS 『용의 눈물』, 『태조 왕건』 (직접 집필)
- 소설 『태종무열왕』, 『장보고』 등
신봉승은 역사드라마 작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가 직접 집필한 드라마 대본을 바탕으로 역사소설을 병행 집필하며 텍스트와 영상의 교차점을 만든 특이한 사례입니다.
『용의 눈물』은 태종 이방원의 정치적 선택과 가족, 충신, 권력 간의 긴장 구조를 세밀하게 그려냈으며, 방송 후 출간된 소설판은 드라마에서 다루지 못한 인물의 내면과 심리를 보완합니다.
작품의 특징:
- 실존 인물 중심, 사건 전개 명확
- 역사적 맥락과 인물 감정의 균형
- 드라마 시나리오 기반의 구어적 문체
드라마화 효과:
- TV 시청자 → 독자로 전환 유도
- 영상 콘텐츠의 확장판 역할
- ‘읽는 사극’이라는 신개념 형성
4. 조정래 – 『태백산맥』 드라마화 없이도 영상화로 회자
대표작 관련 영상화:
- 다큐, 연극, 영화 등 형식으로 다수 재해석
- 드라마화는 미진했으나 지속적인 시도 중
조정래는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삼부작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문학적으로 재구성한 대표적인 역사소설 작가입니다. 『태백산맥』은 한국전쟁 전후의 이념 갈등, 민중의 삶, 국가 폭력을 허구 인물과 실존 사건을 교차하며 다룬 대작입니다.
비록 TV 드라마로는 제작되지 않았지만, 이 작품은 영화(1994)로 제작되었고, 수차례 연극과 다큐멘터리로 재조명되며 영상화 시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작품의 특징:
- 허구 인물 기반 / 실존 사건 중심 구조
- 이념, 전쟁, 인간에 대한 깊은 사유
- 장편임에도 서사 집중력 높음
영상화 효과:
- 책 판매 지속 유지
- 다큐/영화 관람 → 원작 구매
- 학교 독서 교육 자료로 각광
결론: 영상이 역사를 다시 말하게 한다
문학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발견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드라마와 영화는 그 ‘발견의 시기’를 앞당겨주는 기폭제가 됩니다.
박경리, 김홍신, 신봉승, 조정래 등 이름만으로도 한국 현대 문학의 큰 줄기를 이루는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역사와 인물을 다루고, 그 서사가 화면 위에서 다시 살아나며 새로운 독자와 만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작가의 문장과 영상의 이미지가 만날 때, 역사는 단지 ‘지나간 것’이 아니라, ‘되묻는 현재’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