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작가가 주목하는 인물 분석
역사소설에서 인물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닙니다. 그들은 작가의 시선을 통해 역사라는 배경 속에 숨겨진 가치, 질문, 시대정신을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실존 인물이나 역사 속 소외된 인물을 어떻게 다루는가는 작가의 철학과 시대 해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문학적 결정입니다. 본문에서는 국내외 역사소설 작가들이 주목하는 인물의 유형과 그 해석 방식, 그리고 문학적 효과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에는 ‘현대의 역사 인물’이란 주제로 최근 역사소설이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도 함께 다룹니다.
![]() |
| 역사소설 작가가 주목하는 인물 분석 |
1. 영웅인가 인간인가 – 작가들이 재조명한 실존 인물
역사소설 작가들이 가장 자주 다루는 인물은 바로 실존 인물입니다. 이순신, 세종대왕, 클레오파트라, 헨리 8세처럼 역사적 사실로 잘 알려진 인물들은 오랫동안 문학의 주요 소재가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작가들은 이들을 단순한 영웅이나 통치자가 아니라, 내면의 갈등과 고뇌를 지닌 인간으로 묘사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예를 들어,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 장군을 비장한 전사의 모습보다는, 끝없이 밀려오는 두려움 속에서 침묵을 선택하고 외로움을 견디는 한 사람으로 그립니다. 전쟁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내면의 고요를 유지하는 이순신의 모습은 독자에게 “영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해외에서는 힐러리 맨틀이 대표적입니다. 그녀는 『울프 홀』에서 토머스 크롬웰이라는 실존 정치가를 조명하면서, 냉혹하고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인이 아니라, 가족을 잃고 시대에 적응하려는 인간적인 고뇌를 지닌 인물로 재구성합니다.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라도 작가의 시선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서사로 재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2. 소외된 존재들의 역사 – 비주류 인물의 복원
최근의 역사소설 경향은 단지 왕과 장군만을 중심에 놓지 않습니다. 오히려 역사의 사각지대에 있던 민중, 여성, 하층민, 무명의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전통적인 위인 서사에서 벗어나, 좌우 이념 갈등 속에서 고통받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조명합니다. 산골의 농부, 시장의 상인, 이념의 희생자 등 ‘이름 없는 존재들’이 서사의 중심이 되며, 이들을 통해 작가는 “진짜 역사의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마거릿 조지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그녀는 『클레오파트라』에서 흔히 정복자 또는 유혹자로만 묘사되던 여왕을 정치적 전략가이자 국가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리더로 재조명합니다. 여성 인물을 ‘사랑’이나 ‘비극’의 수단으로만 묘사하던 기존 역사소설의 틀을 깨고, 역사 속 여성의 주체성을 회복시키는 시도입니다.
이러한 비주류 인물 중심의 소설은 현대 독자, 특히 20~30대 청년층에게 높은 공감과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독자들도 거대한 역사와 체제 속에서 작은 존재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3. 인물 묘사의 방식 – 문체와 서술 전략의 차이
작가가 인물을 다루는 방식은 그들의 서술 전략, 즉 문체, 시점, 묘사 방식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가령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나는 클라우디우스다』는 1인칭 회고 서술을 사용하여, 독자가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내면에 직접 접속하도록 합니다. 황제의 시선으로 로마 제국의 권력 구조를 바라보게 되면, 역사적 사실이 아닌 역사적 감정과 인식이 전면에 등장하게 됩니다.
반면 조정래나 켄 폴릿 같은 작가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다양한 인물의 관점을 종합합니다. 『거인의 몰락』에서는 귀족, 하층민, 여성, 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각자의 삶과 관점에서 서사에 참여하고, 이를 통해 독자는 역사 전체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문장의 길이, 리듬, 어휘 선택도 인물 묘사에 큰 영향을 줍니다.
- 김훈의 문장은 짧고, 단단하며, 상징적입니다. 이는 인물의 감정을 내면에서 터뜨리는 방식입니다.
- 반면 켄 폴릿은 다이내믹한 사건 전개와 구체적 묘사를 통해 인물과 사건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킵니다.
이처럼 작가의 문학적 선택 하나하나가 인물의 성격, 감정, 배경을 형성하며, 독자의 몰입도와 감정 이입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4. 현대 역사소설의 새로운 흐름 – 동시대 인물의 역사화
최근에는 과거 인물뿐 아니라, 동시대 인물을 역사적 인물로 바라보는 역사소설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습니다.
예를 들어,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실존 정치인과 현실 정치 상황을 바탕으로 한 팩션 형식의 역사소설입니다. 이 작품에서 김진명은 인물을 픽션으로 가공하면서도, 시대와 민족의 문제를 중심에 놓고 "지금 이 순간이 미래의 역사"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또한, 현대 사회 속 사건(예: 핵문제, 통일, 국제 정치)을 다루는 인물들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여, 독자 스스로 동시대적 역사 인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이는 20~30대 독자에게 특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록되지 않은 지금’을 살고 있으며, 미래의 역사에서 자신이 어떤 인물로 남을지 고민하는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소설에서 인물은 시대를 살아가는 생명체이며, 작가의 철학과 세계관을 투영하는 거울입니다. 작가가 누구를 주목하느냐, 어떤 방식으로 그려내느냐는 단지 문학적 스타일이 아니라 역사 해석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실존 인물, 비주류 인물, 현대의 인물까지 — 다양한 시선을 통해 역사는 더욱 풍부해지고, 우리는 그 속에서 오늘의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 책 속 인물을 단순한 캐릭터가 아닌 시대의 화신으로 읽어보는 독서의 즐거움을 경험해보세요.
